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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식이 내인생-6

다음 날 숙영은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기차역까지 허겁지겁 걸어갔다. 물론 버스가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버스를 어떻게 타야할 지 엄두도 나지 않았고 한국 사람 한테 물어 보기도 내키지 않았다.물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왠지 나중에 숙영이 영어도 못 한다고 업신 여김을 당할 것 같았고 또 기러기 엄마로 아이들 데리고 살면서 어쩜 영어도 못하느냐고 흉 잡힐 것 같았다. 그래서 아는 길로 다시 돌아 나오면 뉴몰든 번화가이고 그곳에서는 기차역이 다 보이는 것 숙영도 잘 알고 있다.

등짝이 후끈거릴 정도로 약 30 분 쯤 걸으니 뉴몰든 번화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끝으로 기차역이 보였다.

티켓 창구 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숙영도 그 끝에 섰지만 가슴이 꽁당거리는 소리가 앞 사람에게도 들릴까봐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숙영이 작은 희뿌연 유리창 앞에 섰다. 숙영은 역무원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return ticket to Baker street please"라고 했더니 뭐라고 휙 한마디를 숙영한테 한 것 같은데 도대체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숙영은 그제서야 역무원의 얼굴을 쳐다 보면서 " parden"이라고 했다. 숙영의 얼굴은 이미 상기되면서 간방에 갇힌 담담함이 엄습하고 있었다. 또 역무원이 뭐라고 했는데 분명 돈이 얼마라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파운드라고 하는 것 같았다. 숙영을 얼른 지갑에서 20파운드를 꺼내 내밀었다. 역무원은 두 장의 표와 함께 몇 개의 동전들을 내 놓으면서 천천히 숙영에게 말하는데 숙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바짝 귀울여 보았지만 소리없이 입만 벙글거리는 것 같았다. 역무원의 피곤하다는 눈치와 함께 다시 뭐라고 되풀이 할 때 숙영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thank you'라고 하곤 자리를 피했다.

 

획획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역사 한 귀퉁이에 서서 한참을 서서 기차표를 뚜려지게 살펴 보았다. 하나는 런던 갈 때 사용하는 것이고 하나는 돌아올 때 사용하라는 것이였다. 돌아오는 표를 지갑 안에 잘 집어 넣고 역 입구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처럼 표를 기계 속에 넣고는 위에서 다시 튀어 나오면 빼내고 봉을 밀고 들어가면 되는 것 같았다. 숙영도 표를 집어 넣었지만 순간 머리 속에는 표가 안나오면 어떻하나 하는 불안이 스쳐갔다.

 

기차에서 내려 안내표지판을 조심스레 살펴서 런던으로가는 지하철을 타고 런던 한복판에 발을 디뎠다.

며칠 전부터 지도를 보고 수 십번 공부했는데도 막상 지하철에서 올라와서 본 baker street는 완전 다를 세상 같았다. 왜 이리 사람들이 많고, 어디로 사람들이 가고 있는지-- 쫓아가서 물어 보고 싶었다. 영국의 모든 길에는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 싸인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우연히 위를 쳐다 보니 건물의 2층 쯤에 길 이름판이 보였다. 미리 사전 조사를 해 놓은 종이를 꺼내 들고 숙영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westerminster college를 찾아 갔다. 지하철역에서 2분 정도 걸었다 숙영은 커다란 간판이 보이길 기대했다. 분명히 다 온 것 같은데 도대체 westerminster란 간판이 안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의 건물도 쳐다 보고 옆 건물 근처의 건물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 갔지만 간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위치를 질문할 수는 있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자신이 없어 그만 두기로 했다. 눈 앞에 한국 사람들이 확 들어 왔다. 그리고 그들이 건물의 뒤쪽으로 가는 것 같아 그냥 쫓아 가보았다. 그들은 작은 현관문을 열고 휙 들어가고 있었다. 그 문위에 숙영이 찾는 간판이 이었다.

 

이 층에 올라가니 한국 사람도 있고 다른 외국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놓였다. 상냥하게 숙영에게 인사하는 직원의 말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레벨 시험을 보고 반을 정한 후에 주 4회씩이나 이곳에 와서 4시간 정도 영어 공부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다른 한국 사람 중에서 제법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다시 한번씩 숙영이 알아 들은 것을 확인해 보았기에 마음이 놓였다.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는 다시 긴장하면서 뉴몰든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는 시간까지 못 도착할것 같아 전 날 이웃집 태영이 엄마한테 숙영이네 3명의 아이들을 부탁했었다. 예상대로 태영이네 집에 도착하니 3시 30분이였다.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편안한 집으로 향했다. 얼마 만인가!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고는 숙영은 침대에 몸을 던져 버렸다. 그리곤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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