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영국 학교에 다니게 된다. 영국의 새 학년은 8월 말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둘째와 셋째 아이는 같은 주니어 스쿨(초등학교)에 나이에 맞게 year 3,와 yaer 5로 들어가면 된다고 민박집 아저씨가 그랬다. 그런데 큰애가 시니어스쿨(중고등학교)의 year 7에 들어가는 것이 좀 무리일 거라고 한다. 난생 처음으로 해외에 나온 아이가 어떻게 제 나이에 맞춰 영국학교 교육 속에 들어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숙영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한 학년 밑인 year 6로 넣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그래도 결국 다음 주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상의한 후 결정되는 일인 것 잘 알고 있다. 민박집 아저씨 말로는 그 학교에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있어 영국 선생님들이 한국 학생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유없이 항시 불안하다. 밥 맛도 없고 심지어 영국인 아니 한국 사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무섭기만 하다. 한인들이 가장 많은 뉴몰든 거리를 다니면서도 영국 사람이 숙영에게 말을 걸까봐 겁이 난다. 2월부터 온 가족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확실하게 들리는 것은 오로지 yes와 no뿐이다. 이런 내 영어로 어떻게 세 아이들과 이곳에서 살 수 있을 지, 물론 지금은 민박집 아저씨가 도와 주고 있지만 아이들 학교 입학이 끝나면 안 돌봐 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7시 좀 넘는다. 눈을 비비고 아래층 부엌으로 가서 물 한잔 마시고 커피 한잔 만들어 가지고 거실로 들어간다. 거실에 뒷 정원 쪽으로 난 미닫이 창문이 있다 창문이 한 쪽 벽을 다 차지한 커다란 창문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 보니 하늘이 이름도 모르는 파란색이다. 숙영은 한국의 가을 하늘만 높고 파란 하늘일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영국의 하늘은 어느 외국 여행사의 아프리카 어느 섬 관광지에 나오는 보석같은 파랑이다. 창문을 여니 새 소리가 들린다. 런던이라는 큰 도시인데 새 소리가 들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살랑살랑 볼을 스치는 바람이 달콤하기만 하다. 동화 속 그림같은 작은 벽돌집들이 빽빽히 들어 찬 뉴몰든이지만 조용하다. 차소리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아무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숙영은 맨발로 정원의 풀밭을 천천히 거닐면서 옆 집� 창문도 유심히 쳐다보고, 그 옆 집의 지붕도 살펴 보았다. 한 참을 정원에서 보냈건만 거실로 들어와 tv를 켜니 7시 15분이였다. bbc 아침 뉴스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그래도 시간은 멈춘 것처럼 서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깨울 필요도 없고 특별히 아침을 준비할 것도 없고, 청소할 것도 없고 한 마디로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서울에서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는데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은 생활이다. 그저 할 일이라고는 영어 공부인 것 같다.
10시가 지나니 아이들이 한 둘 씩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눈 비비고 tv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대견해 보여 숙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tv라도 열심히 봐야 영어를 잘 할 것 아닌가. 점심인지 아침인지를 11시 쯤 먹고 다시 tv 앞에 앉았다. 전화도 없어 남편한테 전화할 수도 없고 친정 엄마가 얼마나 궁금해 하실까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tv 앞에서 몸을 가로 세로로 늘이던 아이들이 뒷 정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축구 공을 차다가 나무 울타리을 텅텅 맞추더니 결국 공이 옆 집으로 넘어갔다. 아이들은 숙영에게 달려 왔다.
'엄마 공이 옆 집으로 넘어갔어'
'그러게 조심해서 차라고 했잖아'
'어떻하지?'
'수환이가 가서 공 달라고 해, 미안하다고 하고'
'영어로 어떻게 말해 '
막내 재환이가 얼굴을 내밀더니 'Can I have a ball, please?, 라고 하면 돼'
숙영이는 막내를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모두들 막내가 옆 집으로 가는 것을 거실 창문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막내는 옆 집 현관 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잠시 후 나온 옆 집 영국 아줌마가 공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재환이와 무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재완이는 공을 들고 뛰어 왔다.
'엄마 아줌마가 바로 옆에 공원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축구하래'
'너 그 말 알아 들었어'
수환과 둘� 규환이 합창을 하듯 물었다
'응'
숙영은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찾아 보기로 했다. 똑 같은 집들을 지나치면서 돌고 돌았는데 뉴몰든 하이 스트리트가 나왔다. 특별히 살 것도 없시 또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심심하면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들을 집었다 놨다를 수십 번 했다. 숙영의 눈에는 물건들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구제품 같은 물건처럼 보였다 돈 주고 살 값어치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장난감 코너에서 넋을 잃고 시간을 보냈다.가게마다 들어가 시간을 보냈는데도 겨우 4시도 안되었다. 몇 가지 과자나 음료수를 사 가지고 할 수없이 숙영이네 네 명은 왔던 길을 조심스레 기억하면서 집을 찾아 왔다. 내일 다시 공원을 찾아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다시 tv앞에 모여 앉고 숙영은 저녁을 준비하러 부엌에 들어 갔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올 때 가지고 온 밑 반찬들이 많아 별로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저녁을 먹고 숙영은 영어책을 무릎에 펼쳤다. 한숨과 함께 서 너 장을 읽으면서 단어를 암기하였다. 거실로 내려가 보니 막내만 tv를 켜 놓은 채 소파 위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재환이를 흔들어 깨우면서 올라가 자라고 했다. 9시 밖에 안되는데 모두들 자기 방에서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고 아니면 장을 자기 시작했다. 숙영은 잠이 오지 않아 2시까지
거실에 있다가 침실로 올라갔다. 내일도 오늘처럼 또 같을테지라고 생각하며 한 숨인지 하품인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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