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지사 근무발령 받고는 남편은 먼저 한국을 떠났고 나와 아이는 두 달 후에 히드로 공항에 떨어졌다. 두 달만에 영국에서 자동차를 끌고 공항에 마중나온 남편이 대단해 보였다. 우리와는 다르게 오른쪽 운전대 차를 도로 반대 방향에서 모는데다가 또 길을 어떻게 찾아다니는지 우러러보이기까지 했다(그 당시 NAVI가 없었음). 우리가 살 집이라면서 뽀죽한 지붕을 이고 있는 작은 이층 집 앞에 차를 세우느데 순간 내 남편이 지금껏 함께 살던 그 남편인가 얼굴을 쳐다봐 확인했다. 모든 세팅이 11시간 전 모습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거대한 네모 콘크리트 빌딩에서 살던 나로선 작은 세모 벽돌 이층집에 잔디밭과 예쁜 꽃들이 우리를 반기는 정원은 마치 동화 속 헨절과 그레텔이 내 옆에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였다.
큰 이민가방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음식을 풀고 모처럼 세식구가 모여 밥을 먹었다. 아이도 나만큼 흥분했는지 잠자기 전까지 한 순간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궁금한 모든 것을 묻는 것뿐만 아니라 아빠가 마치 전지전능한 신으로 느껴졌는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궁금한 것을 죄다 풀어 놓았다. 5살 아이와 남편의 두 달만의 해우로 두 사람이 바쁜 사이에 난 집 안밖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뒷 정원에는 집앞과는 다르게 커다랗고 오래된 나무가 좁다란 풀밭 저멀리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잔디밭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 회색이 아닌 초록색 나무들이 시야를 꽉 메우고 있는 것이 기분만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만들었다. 서울보다 더 대도시라고 알고 있던 런던인데 아니 메트로폴리탄이란 대 도시인데-- 런던생활이 아니라 이름 모를 산골 휴양림에 휴가 온 것같은 느낌이였다.
다음 날 남편이 출근한 후 난 아이 손을 꼭 잡고 집 밖을 나갔는데 내 집과 골목에 있는 모든 집들이 쌍둥이 같았다. 옛날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이 서울 자식집을 못 찾아 헤메였다는 에피소드를 들어 본 적 있는데 내가 바로 영국 런던에서 시골 부모 신세가 될 줄 서울을 떠나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집을 나오면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하루 밤 자고 나온 세모 집 모습을 다시한번 내 머리 속에 인지시켰다. 주변 집들 구경하면서 앞 마당에 피여 있는 꽃구경하면서 골목을 따라 돌고 돌았다. 이렇게 예쁜 집들은 많은데 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지 궁금했다. 낮에는 집에 사람이 없나 보다 싶었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아이 말에 발길을 멈추고 180도 돌아섰다. 다시 오던 길을 더듬으면서 걷고 있는데 왔던 길에 보았던 집들이 아닌 것 같았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면서 왔던 길을 되짚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길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모든 집들이 똑 같아 보이는데다가 또 골목마다 저마다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이름이란 것이 영어다 보니 내 머리에 쏙쏙 들어올리 없었다. 이미 내 집이 놓여진 길 이름마저 잊어버렸다. 내 집 골목 이름을 모르니 누구를 찾아 물어 볼 수도 없다. 물론 행인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지갑을 들고 나와 동전은 있지만 남편 회사 전화나 모발폰번호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먼 이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미아가 되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가다듬고는 우선 길 옆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나무들 사이를 찾아 아이의 볼 일을 보게 했다. 그리곤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할 일도 없으니 아빠 올 때까지 동네구경 좀 더 하고 돌아가자고 아이를 안심시킨다기 보다 날 안심시켰다. 오전내내 아이와 함께 돌고 또 돌아 두 시간여만에 돌아왔다.
아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이층 벽돌집 동화 속에서 헤메고 다닌 것이 영국 도착 다음 날 일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주재원의 부모님이 영국을 방문했는데 어느날 아버님이 저녁식사 후 산책 나갔다가 집을 못 찾아 다음날에서야 경찰에서 아들 회사로 전화해서 찾았다는 일화가 있었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미아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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