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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명절의 외로움을 아시나요

한국의 많은 주부들이 요즘 나를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몹시 부럽다. 특히 명절 시집살이 그립다. 북적거리는 시장 골목과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부치미 기름냄새, 시댁과 친정 식구들 구정 선물 준비, 남편과 구정을 앞두고 돈 문제 실랑이, 무엇보다도 구정 때 시댁에서 부대끼는 정신적 부담감 등이 한국 주부들을 괴롭힌다.

 

구정인 오늘 나는 9시쯤 일어나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으로 가득차 있다. 구정 날인데도 냉장고에는 한 통의 김치와 돼지고기, 약간의 야채만 있었다. 김치찌개를 끓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 나물과 시금치 나물을 만들었다. 김치찌게 냄새가 온 집안을 휘저으니까 남편과 아이가 아래 층 부엌으로 내려왔다 아침을 먹고나니, 남편은 정원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낙엽을 주워서 화로통에 넣고 태우기 시작했고 아이는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남편이 골프 연습장으로 나간 후 나는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니 벌써 4시가 되었고 다시 남편이 들어 왔다. 부랴부랴 점심도 없이 저녘을 준비해야 했다. 집 옆에 가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아니면 차를 타고 슈퍼마켓까지 가는 열의가 있어야 하는데---남은 돼지고기로 돈까스를 해서 맛있게 먹었다. 맘에 찰싹 와닿지도 않는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TV를 켜놓고 한국의 경제가 좋아야 하는데--이 번 선거는 어떻게 될까 등등의 얘기를 나누다가 남편은 소파 위에서 잠이 들었다. 시험 공부하고 있는 아이 방에 들러 음료수를 내려 놓고 방에 들어와 책을 폈다. 그리고 10시 쯤 되어 컴퓨터를 켜고 구정 날 내가 한 일을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의 감정에 있는 여러가지 즐거움,노여움, 사랑, 질투, 미움 등 온갖 느낌을 느껴 보면서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설날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일하고 난 뒤, 사우나에 가서 뻣뻣해진 허리를 지지고 집에 와서 누웠을 때 진짜 달콤한 휴식이 아닐까. 마치 폭풍우가 끝난 뒤에 평온한 날씨를 우리는 정말 고마워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어렵고 지겹기까지한 일상사가 고맙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외국생활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