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를 넘어서더니 말로만 듣던 일이 주변에서 일어났다. 남편의 대학 친구가 퇴직을 시작했다. 80년대에 졸업할 당시에는 금융회사에 취직한 친구가 최고였다.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시기였다. 이 친구의 월급은 대기업보다 많았고 보너스로 회사 주식까지 받았다. 그렇게 잘 나가던(?) 친구가 90년 이후로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 작년 말에 퇴직을 당했다고 한다.
맘 고생이 많았던지 그 사이에 암 진단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이번 기회에 영국 여행이라도 하면서 머리라도 식히라고 권유했으나 이 친구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상계동 35평에서 살고 있는데 대학 졸업하는 아들과 고등학생 자식이 있어 자신을 위해 몇 백만원도 쓸 수 없다니 아쉬웠다. 이른 새벽부터 빼곡한 전철을 타고 출근하여 밤 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서 어언 20년을 보냈다. 앞으로 우리들은 30년 정도 더 산다고 볼 때 30년 동안의 생활비를 어떻게 조달할 지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이제 퇴직까지 한 상태에서도 자식의 결혼까지 준비해야 하니---
바로 이 친구와 함께 또 다른 남편 대학 친구가 우리집에 왔다. 그 당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느 선박회사에 입사했던 친구는 입사 10년 후 독립하여 회사를 차리고 어언 15년 정도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내 남편 친구가 가족과 함께 2주간의 유럽 여행을 하는데 첫 경유지로 런던을 찾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국에서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2주간의 유럽여행을 허용할 수 있다니 대단해 보였다.
요즘은 우리 50대에게는 확고한 자신의 일거리가 있느냐와 자식농사가 우리들의 잣대로 들이어진다. 한 때 많은 급여을 받았을지라도 월급보다 많은 술값을 치렀더라도 지금 50대 이후에 자신의 일이 있어 자신을 몰입하면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주위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또 이와 함께 자식들이 대학진학과 취업이 우리들의 뒷목을 떠받치는 힘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다. 이때 강북이라고 하면 막무가내식으로 사람을 앝잡아 보기도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집에 냉장고가 있냐 텔레비전이 있냐 등으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더니
10년 후 대학입시의 결과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대학의 이름으로 우리들을 일렬로 줄 세웠다.
80년대는 취직이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지만서도 취직과 함께 몇 평에서 사는냐로
이제는 현직 종사와 자식농사로 그리고 어느 동네에 사느냐로 우리를 얽어 매고 있다.
우리는 병에 결린 것이 틀림없다. 등급 매기기 병에 걸렸다. 그리고는 등급에 따라 사람을 대한다.
우리는 왜 항상 잣대가 있어야 하는지 잣대가 없이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즐길 수 있는 법을 모르는가 보다.
이런 우리가 바로 베이비부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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