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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람

영국이 살기 좋은 이유

우리는 종종 자식이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를 묻고 속으로 내 아이와 비교한다. 아니면 자식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 그리고는 내 자식이 대학 진학을 못했거나 연수를 못 갔다왔으면  '오매 기죽어'가 되고 속이 타들어가곤 한다. 아니면 상을 못받았다고 반장이 아니라고 내 아이가 저집 아이보다 왜 못하냐며 질투가 꿈틀거리다가 화를 낸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리다 애꿏은 소중한 가족과 싸움을 하게 만든다.

 

다음은 내 남편과 친구 남편를 비교한다. 겉으로는 호탕한 웃음으로 즐겁게 친구와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 오지만 속은 화가 치밀어 들어온다. 신경질은 다시 남편에게 불똥으로 튀겨 부부싸움의 도화선이 되곤 한다. 친구의 집 위치와 평수, 그리고 나의 집은 강북에 그리고 여직 20평에 살고 있다면 또 다시 도화선에 불을 지른다.

 

그래도 가끔 열심히 저축해서 아니면  우연히 투자한 재개발로 인해 큰 평수로 이사하더라도 곧 옆 친구들은 다시 더 껑충 뛰어 더 멀리 달아난다. 그러면 다시 허탈해지고 삶이 다시 질투의 화신으로 변해간다.

 

어느날 나타난 친구의 날씬한 아니 20대 못지 않은 몸매와 뽀얀 피부를 보면 다시 우울과 질투는 움튼다.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는 남편에 대한 불평으로 끝을 내기도 한다. 친구부터 옆집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종종 비교를 하고 일렬로 줄서워서 상대방보다 낮은 서열이면 질투가 나오고 속이 상하게 마련이다. 즉 자신의 삶을 싫게 만든다.

 

그러나 이 먼 영국에서는 비교할 가까운 한국 사람이 없다보니 마음이 편하다. 내가 좀 못하더라도 좀 잘하더라도 살다보니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비교할 사람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그런덴 간혹 이곳에까지도 한국 사람들과 너무 친하게 만나고 살다 보니 우리의 못난 행동인 <비교하기>가 다시 작동한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 속으로 비교하고 질투하고 결국에는 섭섭한 나머지 얼굴보기도 싫다는 사람들을 다시 만들면서 살고 있다.

 

또 하나는 여기서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로 사람을 알아가지 내 남편의 직업이나 내 자식, 집 평수 등으로 수다를 채우지는 않는다. 만약 이런 얘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영국인들과 친구로서의 인간관계를 경험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곧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외부의 것만을 자랑하지 자신의 것을 인식도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

 

내가 아는 영국 주부들은 대부분 다 일한다. 한 여자는 아버지가 옥스포드대학의 교수였고 남편은 큰 고등학교의 교장인데도 자신의 가정생활이 허용되는 시간안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파트타임일이 그렇듯이 판매직일이다. 우리는 만나면 우리의 생활 얘기를 한다. 남편이 아니고, 자식 일이 아닌 자신들의 얘기이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파트타임을 시작했다. 이유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서 이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그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으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낮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찌나 지겨운지 나중에는 살아 있는지 아니면 종이인형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과 만나 수다 떠는 것은 더 싫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그 질투로 인해 서로 증오만을 남기고 소원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집이 런던 내에 있지 않아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이유도 있다. 다른 면에서는 영어를 생활에서 배우고 싶어서였다. 컬리지에서 자격증 한 두개 따면 되었지 더 이상 무엇을 공부해야 할 지 모르겠었다. 또 몇 년을 살아도 그 쉬운 한 마디만 하려고 하면 왜 이리 버벅거리는지 영어가 내 입에서 나오자마자 후회가 밀물처럼 휘덮는다. 몇 년씩을 살아도 전화요금 영수증이 잘못되어 전화로 따져야하는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부탁하는 것도 이제 자존심 상한다. 나도 대학을 나온 괜찮은 사람(?)인데 허구헌날 부탁만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우연히 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내 아이가 어느 한국 사람이 전화로 나를 찾기에 내가 일하러 같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그 주변의 다른 한국 아줌마들이 나를 가엽게 쳐다 보는 것이다. 얼마나 생활이 힘들면 남편이 사장이라는데도 일하러 다닐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내고 엄마인 가정주부이지만 내 생활이 가정만이 아닌 사회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내가 가정주부로서의 일에만 만족하면서 살기를 원했다면 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어야 했었다.

 

여기에서 살면서 외로움도 많지만 편한 것은 사회나 주변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죽도록 남과 비교하고 남 눈치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찌하다가 이런 풍조가 만연하지 참 마음 아프다.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사모님이면 반드시 집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선입관, 주부가 파트타임이라도 하면 그 사람 생활이 어렵겠다고 생각하는 편견, 성적이 좋지 못하면 삶의 실패자라고 눈 흘기는 판단, 남이 벤즈 타면 나도 벤즈 뽑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런 고정된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어 영국 살이가 좋을 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