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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람

3명 중 1명은 홀로 살아요

레딩센터에 새 아시아 부페식당이 생겼다고 해 친구들과 점심을 했다. 인도음식, 중국, 영국음식, 심지어 한국음식까지

150여가지가 차려진 부페인데 점심은 8파운드였다. 개업기념으로 좀 싼 편이였다. 내 입맛에는 한국음식으로 나온 김밥이

별로었지만 그래도 두 영국친구들에게는 괜찮은 모양이였다.

 

멜다는 곧 온 가족이 자전거로 유럽여행을 한다고 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멜다와 딸은 자전거타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는 대신에 둘은 차로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숙소에서 온 가족이 만날거라 했다. 그런데

결국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남편이 멜다와 딸도 다 함께 저전거를 함께 타야 된다고 강요하기 시작했단다.

아내가 하자는대로 아내의 의견을 꽤나 존중해 주던 남편이였는데 이번에는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것 같아 보였다.

한 번도 이렇게까지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지 않던 영국남편인데--

 

멜다는 남편에 대한 불평을 계속 쌓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중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

멜다 생각에는 회계사인 남편이 아들의 수학을 좀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비싼 돈 내고 과외수업을 하는 것도 못 마땅하다.

또 아이들 생일파티에 들어간 비용목록을 보면서 왜 이리 많이 썼냐 또 집에서 하면 안 되었느냐며  멜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멜다가 가장 원하는 것은 집 커튼과 가구를 사고, 집 수리 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것에는 전혀 맘에도 없고

그저 좋아하는 여행만을 다닌다. 내가 보기에도 멜다네 집은 수리와 단장이 필요하다. 벽지를 새로 붙이던가 페인트를 칠할 필요가 있다.

난 멜다에게 남편이 미래에 대해 불안한거 같아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별 대답이 없었다.

 

여하튼 이번엔 멜다도 할수없이 남편의 요구대로 저전거 여행을 갈 것 같다. 그러나 멜다에게는 무척 싫은 것을 이주일 동안 하는 것인데

어찌 될 지--- 이주 간에 싸우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요즘은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면 싫어 죽겠다는 것이다. 

주변에 이혼하고는 오히려 더 맘 편하게 잘 사는 친구들이 많다며 자기 맘대로 편하게 살고 싶다며  이혼도 생각하고 있다는

뼈있는 말을 남기고 우린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우연히 신문을 펼쳤는데 마침 68세 유명작가가 이혼 후 생활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쓴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1987년, 두 아들들은 18,19세로 막 대학생이 되었다. 결혼 20년을 이혼으로 끝마친 후 심정은 마치 지하실에서 빠져나와

신선한 공기를 처음으로 들이 마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곤 우선 플랏(연립주택)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새 집의 문을 여는 순간 그녀에게 들어온 감정은 안도감과 함께 두려움이였다.

 

혼자 사는 것의 첫 보너스는 집안을 어지럽히거나 더럽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집안을 그녀의 취향대로 꽃무니와

크림색 카펫으로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황홀감은 겨우 몇 년간만 지속될 뿐이다. 이혼 후 25년간의 싱글생활 후

요즘 그녀는 몹시 외롭다고 했다. 주말에는 보통 다른 사람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지내곤 한다.

현재 통계에 따르면 33%의 영국인들이 혼자살고 있고 이 33%가 대부분 34세에서 64세의 중년이라고 한다.

 

1950년 이전에는 혼자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2차대전 후부터 변화하더니, 1960년에는 싱글족 연립주택이나

스투디오플랏이 나타났다. 그후로 계속 싱글족이 증가하는 것이다.

 

18세에 대학에 들어가고 21세에 결혼한 후 20년 결혼생활을 40대 중반에 이혼으로 마감했다. 이때 결혼실패에 대한 슬픔과 함께

얽매이지 않은 행복감도 있었다. 이혼후 그녀와 전 남편은 모두 변했는데 이전에 저마다 좋아하던 것들이 이제는 좋아하는

목록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

 

이혼 후 제일 어려웠던 점은 남자의 손길이 요구되는 집에 못박기, 고치기 등의 수리 또한 집융자 신청과  자동차와 신용카드 신청 등이다.

그러나 홍수로 인해 집에 물난리를 겪은 후에는 이런 자신감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혼 후 가장 자랑스럽던 순간은 남자의 도움없이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였고,  제일 좋은 점은 그녀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나 일이 그녀 주변에 없다는 것이였다. 즉 주변이 항상 조용하고 평화롭다. 작가겸 저널리스트로서 이런 환경은 그녀에게 더욱 중요했다.

 

그녀의 친구들도 거의 40대에 이혼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혼에서 탈출하는 유행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모든 싱글족 친구들이 함께 히말라야등반도 하고 낙타 타고 사파리여행도 다니면서 진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현재 20대 젊은이들이 주로 하는 일들을 그녀와 친구들은 40대에 한 것이다. 이때는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을 박차고 나온 용기가 있어 자신에게 자랑스러웠다.

 

이혼한 지 4년 쯤 된 어느날,  혼자 살고 있는 저널리스트 존을 만났다. 서로 보자마자 둘의 사랑은 시작됐다. 자연적으로 함께 살고 싶었으나 둘의 서로 다른 취미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남자 집에는 작은 군인 인형과 모형 배, 바다그림 등이 그녀의 관점으로는 지저분하게 널려 있고 존은 특히 운동경기 시청을 좋아한다. 결국 각자 자신들의 집에서 살면서 보고 싶을 때 함께 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사니까 그녀의 자식이나 부모가 자유롭게 그녀의 집을 들락거릴 수 있어 더 좋았다.

 

이렇게 12년을 함께 했는데 2004년 존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 그녀는 68세. 그녀는 고백했다.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고--

쓸쓸하고 비참하기까지 하다고--한 때 멋있다고 생각했던 자유로움은 이제 포악하며 암울하다고--

 

혼자 먹기 위해 요리하는 것은 이미 사라졌다.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발면과 ready meal로만 끼니를 떼우는 것을 볼 때

자신은 결코 늙어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본인도 결국 사발면과 데워서 먹을 수 있는 냉동음식들만으로 식사를 한다. 지금은 한 집에

누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떨까 몹시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물론 그녀에게도 두 아들과  5명의 손주들이 있다. 가끔 그녀를 찾아오지만 워낙 멀리서 살고 있어 진짜 가끔씩 찾아온다.  자식들이 그녀를

걱정해 주고는 있지만 부모로서 자식들이 그녀에 대해 너무 걱정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또 좋은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녀를 곁에서 진심으로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늙어가면서 큰 어려움이며 외로움이다. 그녀의 새 책이 곧 출판되지만 츨판 날에 그녀의 집에는 그녀를 축하해 줄 사람이 없다.

 

누군가 한 얘기가 생각났다. 여자들이 40대가 되면 혼자 살고 싶어하는데, 70세가 되면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40대에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위험스럽다. 마치 사춘기를 다시 맞이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