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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영어 과외비를 시간 당 40파운드

 

영국에 아이들을 데리고 막 도착한 경우에는 영어과외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이 영어과외를 아이들 대학전까지 한다. 시간당 적게는 30-40파운드를 들인다. 나도 95년 처음 남편따라 영국생활을 시작할 때 아이가 5살로 영국교육을 막 시작하는 시기였다. 그때는 시간 당 10파운드씩 주고 주당 한 시간씩 영어과외를 시켰다. 이 당시 우리 아이에게는 영어는 예스와 노 밖에 없었다.

 

남편이 주재원으로 근무할 거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이에게 영어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기에 놀면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아이를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넣고는 집에 와서 애를 태우면서 오후 3시가 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이가 어떻게 생활할까? 울지는 않을까?하면서 너무 머리를 쓴 나머지 또 시차적응도 되지 않아서인지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야하는 시간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따르릉 울리는 전화에 깨어 보니 학교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자 남편에게 전화했고 남편은 집으로 전화한 것이다.

 

2년이 지나 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올라가서야 우연히 다른 영국 아줌마한테 우리 아이가 초창기에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게 되었다. 첫날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인 내 아이를 20여 명의 금발 아이들이 내 아이의 주위로 모여들어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고 또 다른 질문들을 했단다. 그러나 내 아이는 이름 이외에는 다른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빤히 쳐다 보다가 에스, 노를 번갈아 가며 말했다고 했단다. 결국은 교실문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년 위인 조안나라는 여자 아이가 내 아이의 손을 잡고는 마치 동생처럼 인형처럼 하루종일 데리고 다녔단다. 학교가 끝나면 조안나가 내 아이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교문을 나오고 또 같이 동네 오솔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 당시 내 영어도 형편 없었으니 다들 눈치 채고 나한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온 어린이들이 골목안에 한 두명 모습을 나타나면 난 내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함께 놀도록 유도해 주었다. 몇 번 하다 보니 영어를 못해도 우리 아이와 동네 영국 아이들이 금새 친해졌다.  이때 난 몇 명의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간단한 음료수와 과자를 주었다. 그러면 더 친해 지는 것 같았다.

 

비싼 영어 과외보다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영어를 배우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영국 친구들과 함께 취미활동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때 다른 영국 친구들이 하는 활동 즉 수영, 걸스카웃과 같은 그룹(이제 이름도 잊어버렸다), 또 노래하고 춤추는 그룹활동에 참여 시켰다. 그때 다른 한국 아이들은 모두 영어, 수영, 피아노, 바이올린 레슨을 받느라 몹시 바빴다. 그러나 난 다른 영국 아이들을 종종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하루밤 우리집에서 자는 sleep-over파티도 했다. 또 내 아이도 다른 집에 보내서 자고 오기도 했다.

 

99년에 한국에 들어갔다가 03년 여름에 다시 왔을 때는 내 아이가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 한 학기를 마친 상태였고 여기에서는 나이대로 8학년에 들어갔다. 8학년이면 9학년에 영국중등졸업시험(GCSE)의 과목을 정하고 course work을 치르고 10학년에 GCSE시험을 봐야하는 시기였다. 다시 말해 중등졸업시험 2년 전이였다. 다시 영국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이의 공부 때문에 나와 아이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왜냐하면 갑자기 온갖 화학기호와 물리, 생물 등의 전문용어를 모르기 때문에 교과서 한 페이지를 읽으려면 한 두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제 나이보다 더 내려서 영국학년에 넣어야 했어야 하는 후회도 잠시 해 보았다. 학교 숙제를 밤 2시까지 해도 10%만 할 수 있었다. 난 옆에서 사전을 갖고 도와는 주지만 그 당시 그 막대한 분량의 책들을 어떻게 영국학생들처럼 읽고 이해해 숙제를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과외할 생각은 없었다. 내 아이가 스스로 알아내고 익혀야만 되는 것이여서-- 전문용어의 뜻을 찾는데 도와는 주고 옆에서 자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내가 한 모든 일이였다. 그러면서 다시 영국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했다. 공부보다는 서로 감정을 교류하면서 친밀감을 갖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고 그러면 공부도 따라 오리라 믿었다. 결국 내 바람대로 예상대로 아이는 영어과외 없이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이제는 런던에서 의대생이 되어 살고 있다.

 

영어과외 때문에 아이들이 영국 친구들과 사귈 시간을 빼앗는 경우가 있다. 영어과외 때문에 친구들의 생일파티나 영화구경에도 함께 못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다르고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결정하게 되지만 영국에서 몇 년씩이나 살면서도 영어과외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것보다 그 돈으로 다른 취미활동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흥미도 느끼면서 영어를 더 향상시킬 수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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