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몰든에 사는 한 아줌마 집을 방문하려 막 문을 열려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잘 알고 지내는 한국 아줌마였다. 일 년에 한 두 번 씩 만나서 점심도 먹고, 가끔씩은 전화통화도 한 시간씩 하면서 알고 지낸 아줌마다.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7년여 기러기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비자 문제로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래서 빨리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문 밖에서 서성거리며 통화를 하다가 결국 집 주인이 나를 발견하고 문을 여는 바람에 통화를 멈추었다.
집 안에 들어가 차 한 잔을 앞에 놓더니 나에게 물었다. "친한 사람인가 봐요" 이 말에 난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좀 머뭇거리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 앞에 있던 아줌마가 "여기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은 서로 친해 보여서 나중에 잘 아는 사람이예요?"라고 물으면 "아니예요"라고들 한다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방금 나에게 전화한 사람을 친한 사람이라고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은데 이런 질문에 쉽게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안 나왔다. 사실 난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름과 주소, 학력, 나이 가족관계는 안다. 또 여기서 아이들과 살고 있고, 아이들 공부 잘하고 있고, 자신의 비자문제로 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 밖에 아무 것도 모르니 내 입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보통 우리네(아줌마)의 친한 사이라고 하면 겉치레적인 인적사항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남편은 뭐하는지, 가정의 경제적 상황까지도 대충은 알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가정내 문제들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하지만 난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내 입에서 쉽게 "그 사람과 친해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분은 내 말을 듣고는 이해가 된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방문하고 있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도 서로 알고 지낸 지 일 년이 넘었지만 남편이 뭐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난 모른다. 단지 인적사항만 알고 있다.
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아님 모든 것을 감추고 싶어서 그러지, 가끔씩 자신에 대해서 전혀 알려 주지 않으려는 아줌마들이 있다. 그러니 이런 사이에서 주고 받는 대화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뿌리가 얕은 나무와 같지 않은가! 바람 불면 쉽게 뽑히는 나무와 같은 사이-전화번호가 없어지면 관계가 끊기는 사이일 것이다.
영국에 살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 호구조사하는 습관은 없어졌다. 영국사람들마냥 행동이 좀 변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영국 친구사이에도 친해지면 속 상한 얘기, 남편과 자식 땜에 고생하는 얘기를 솔직히 끄낸다. 만나서 자랑거리만을 얘기하지 않고 고민거리를 얘기하는 사이로 변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친해요"라고 말 할 수 있다. 이건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시하고 싶은 몇몇 사항만을 끄집어 내놓고는 몇 년 동안 공들여 만나 보았자 이런 관계는 전화번호 없어지면 사라지는 사이인 것이다.
'한국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 한인사회 (0) | 2013.01.26 |
---|---|
중국,한국인과 유명상표 (0) | 2013.01.03 |
유학생활 끝이 가까와지면-- (0) | 2012.01.13 |
요즘 떠밀리듯이 영국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늘어요 (0) | 2010.12.08 |
한국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0) | 2010.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