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국교육

영국친구와 일 년 살고 난 후

작년 이맘 때 쯤 내 아이가 집을 구하러 다녔는데 어제 짐을 뺴 왔다. 2년 전에 대입을 마치고 부모곁을 떠나 자신만의 3평 공간과 초코릿같은 자유를 만끽한다는 꿈에 내 아이를 비롯한 많은 다른 신입생들이 기숙사 입소 직전에 둥둥 떠다녔다. 작년에는 2학년이 되면서 기숙사에서 나와 친구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을 얻었다. 그 복잡하고 가장 현실적인 일인데도 월세집을 구하는 일이 20세 젊은이들에게도 매력적인가 보았다. 아이의 학비와 용돈은 정부 융자금으로 대체하고 우리는 아이에게 매월 550씩 주기로 했다 이런 틀 안에서 아이는 자신의 생활을 짠다.

 

학년은 9월에 시작하는데 7월부터 내 아이와 친구가 런던시내에서 방 두개짜리 플랫을 구한다며 돌아다녔다. 내 맘 같아서는 9월에 들어가는 월세를 얻거나 아니면 함께 돌아다니면서 봐 주고 싶었다. 젊은 학생들이 집을 제대로 볼 수는 있는지, 부동산이 믿음이 가는지---등등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에 아이한테 말로만 이르는 것이 영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참았다. 영국친구의 부모도 자식일에 나서지 않고 있으니 한국부모 극성스럽다는 인상을 주기는 싫고 해서 나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깨끗한 1100파운드짜리 플랫을 전철역 근처에서 작년 7월에 구했다. 

 

살면서 보일러에 문제가 발생해서 며칠 간 보일러가동이 안 된 일도 있었고, 열쇠고장으로 문이 안 열리는 일, 집안에서 쥐가 출현한(?) 사건,

등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별 문제없이 일 년이 지났다. 한 번은 열쇠고장으로 아이들이 추운 겨울 밖에서 떨고 있을 때 친구집으로 전화했다.  그러나 친구부모는 열쇠수리공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번호만 알려 주었다. 아이의 친구집은 런던 리치몬드에 있다. 같은 시내에 있으면서도 자식이 월세를 얻어 나가 살기를 원하니 그렇게 해 주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난 아마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할 것 같다. 전철로 30분만 가면 되는 곳이니.

 

한 번은 집안 온도조절기가 망가진 것을 모르는 바람에 가스보일러가 계속 3개월 동안 가동되었다. 결국 가스비가 300파운드 나온 적이 있었다. 가스비에 두 사람은 정신이 나갔다. 난 속으론 친구부모가 돈을 보태 준다면 나도 보태야지하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친구 부모로부터 보조금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의 용돈과 음식값으로 해결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월세계약을 빨리 종결하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각자 집에서 정기적으로 받는 지원금이 모두 월세에 나가면 여름방학에 쓸 돈들이 없다고 이제는 빨리 월세를 끝내고 싶어했다. 계약 당시부터 그집 부모나 우리나 모두 자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서 천천히 얻으라고 했다. 그러나 독립을 흉내내는 일에 기분이 좋아서 이런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결국 우리말대로 본인들이 월세계약을 빨리 철회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난 한국사람 웹사이트에 월세광고까지 올려 주었다. 물론 아무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영국부모는 달랐다. 너가 선택한 일이니 너가 책임지라는 식이였다. 결국 아이들이 집주인과 수많은 연락 끝에 집주인을 승복시켜 새로운 입주자를 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달 월세는 안 내고 나오게 되었다.

 

어제 난 런던시내에 가서 아이의 짐을 차에 싣고 왔다. 그런데 또 달라진 딸의 모습을 발견했다. 난 허리가 아픈 것도 아니데 가만히 앉아 있으란다.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거리며 무거운 것을 계단 아래로 날랐다. 가 보니 친구의 방은 이미 비워져 있었다. 하루 전에 부모가 와서 짐을 실어 갔단다. 거의 다 실었는데 친구가 왔다. 다음 날 집주인이 집안조사(인벤토리체크)를 하니 두 사람은 청소를 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를 남겨 두고 차 시동을 걸었다. 그때 아이가 나한테 차 안에 있는 물건 절대 집안으로 옮기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전에는 없었던 것인데--집으로 오면서 아이가 했던 말들을 끄집어 보니 영국친구의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변한 것 같아 보였다.

 

친구의 부모는 성인이 된 자식일에 조언할 뿐이다. 부모의 눈에 문제가 있어 보여도 자식이 원하는대로 하게 하는 것 같다. 이러는 만큼, 문제발생 시 자식 스스로 해결하게 하지 손발 걷어 부치고 나서지 않았다. 잘못을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지켜본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주고 그 상황 안에서 자식이 스스로 결정하고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케하고 결과가 나쁘더라고 책임지도록 부모가 행동한다.

 

다행히 좋은 친구를 만나서 일 수도 있다. ----내 딸이 올 9월부터는 어떤 식으로 살지 나도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