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이맘 때 쯤에는 난생처음으로 기숙사에 들어간다는 흥분감이 우리 아이를 휘감싸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집(?)에 들어간다는 흥분과 성취감이 아이를 더 젊고 싱싱하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6월이 시작되면서부터 기숙사에서 함께하던 같은 과 친구들이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이번 9월부터 살 집을 구하였다. 4-5 명이 함께 단독 주택을 구하기도 하였는데 우리 아이는 더 이상 기숙사 분위기가 싫다면서 친구 한 명과 함께 살겠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10월에 대학의 학년이 시작하지만 우리 아이 경우에는 9월 중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도 6월부터 집을 구하면 아무리 늦게 입주일을 잡더라도 8월초에 입주를 시작해야 한다. 난 천천히 알아 봐도 된다고 했지만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좋은 집이 다 나간다는 핑계를 대면서 서두르고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학년 마치기 전에 벌써 집을 구해 놓고 집에 돌아 갔다는 것이다.
여하튼 내 아이도 6월 하순부터 방 두개짜리 플랏(연립주택과 비슷함)을 구한다고 집에서는 인터넷과 전화통을 붙잡고,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런던을 기차를 타고 네다섯 번이나 다니더니 어제 저녁에 계약을 하고 왔다. 여기 대학생들은 정부로부터 등록금 3300파운드와 런던에 사는 경우에는 유지비로 4900파운드를 융자 받을 수 있다. 이런 융자는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직업을 잡고는 년간 소득이 어느 정도 되면 천천히 갚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융자를 받는다. 보통은 이 유지비로 집값을 치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식비나 용돈 등이 필요한데 어떤 학생들은 본인이 벌어서 쓰는 경우와 부모가 지원해 주는 경우이다. 부모가 지원하는 경우에는 아이에게 얼마를 대주겠다고 결정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의 경제상황 하에서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기숙사인 경우에도 우리 아이의 경우는 허름한 곳에 배정 받아서 오리려 나중에 200-300파운가 남았으나 좋은 곳에 배정 받으면 오히려 부모가 1000-2000파운드 더 치러야 한다. 런던에서 방 하나가 월400파운드 정도부터인데 돌아다녀 보니까 방벽에 곰팡이가 버젓히 드러나 있거나 아니면 전철역에서 멀거나, 혹은 문의 안전장치가 허술한 곳들이 많더라는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 멀지 않으면서 전철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방 두개 플팟을 월 1040파운드로 어제 계약서를 쓰고 들어 왔다. 앞으로 각자 월520씪 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와 함께 돌아 다니고 싶어서 아이 옆을 기웃거렸다.또 시간만 있으면 이 엄마의 전공(?)인 주택문제라서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내 속마음은 같이 돌아다니면서 월세집 구하는 것을 대신 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여기서는 아이의 다른 친구들도 다들 자신들이 하는 것 같았다. 속으론 얘가 제대로 알아 보고 있는지 주택에 대한 현실감이 있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지만 참았다. 아이의 친구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좋은 집을 아이들이 알아 보면 케이트(아이의 친구)의 엄마가 가서 직접 봐야 한다고 했단다. 그런데 집이 가격에 비해 괜찮다 싶으면 처음 시장에 나오자마자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냥 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가서 점검한다고 하면 좋은 집을 구하는 것은 꿈일 것 같았다.
몇 번을 런던에 가서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면서 돌아다니고 아이들을 통해서 정보를 듣고 하면서 결국 모든 일을 아이들에게 맡겨야 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 집을 나설 때에는 아이에게 계약금을 쥐어 보냈다.
집이 좋으면 가격이 비싸서, 위치가 나쁘면 가격이 적당하고 --어떤 학생은 년간 유지비용 융자금4900파운드에 맞는 즉 월400파운드 짜리에 그냥 맞춰서 얻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아주 저렴한 곳을 얻고는 융자금을 용돈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우리처럼 런던 근교에 사는 학생은 집에서 머물고 기차 타고 통학을 하고는 유지비 융자금을 용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여하튼 각자 자신의 상황에서 허용되는 선택을 해야하는 이 과제가 20세에 아주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우리 엄마들은 잔금 낼 때 가서 아이들의 작품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7월 중순에 입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맘에 들어서 입주 일이 이른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청난 월세을 내면서 집을 비워 두기도 그렇고 --내 생각에는 월세집은 항상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 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들이 처음하는 경험이라서인지 서두르고 있다. 나도 케이트 엄마도 우리가 보기에는 만족스럽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의 결정에 저지하지 않는다. 우선 자식과 부모사이에 결정난 문제들 즉 돈을 얼마 만큼 보태 주겠다는 것만 끝나면 더 이상 아이들이 하는 일에 끼어 들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그저 약속한대로 매달 용돈을 주면 된다. 아이들이 우리가 보기에 다소 불안정한 선택을 하더라도 스스로 체험하면서 배우길 바라고 또 자신들의 선택에서 야기된 책임까지도 자신들이 지어야 되는 것을 배우게 한다. 물론 책임이 치명적인 것은 분명 막아야 하겠지만.
20살부터 스스로 집 구하러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경제상황 하에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 등이 아이들의 독립성을 더욱 키워 주는 것 같아서 나는 희뭇하다. 이런 영국의 사회 분위기가 아니였으면 고등학교를 갓졸업한 이런 나이에는 해 보지 못하는 체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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