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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람

그냥 가져 가고, 나중에 돈 내세요.

모처럼 날씨가 좋아 남편이 골프 치는데 선뜻 따라 나섰다. 여기에서 살고 있는 거의 모든 한국 남자뿐만 아니라 아줌마까지도 골프를 좋아하지만 난 좋아 하지 않는다. 작은 공이 제대로 하늘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사선으로 날라가 가시 수풀 속에 떨어지기 일수니 내가 어찌 골프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일 년만에 집에서 5분 거리의 골프장에 쫓아갔다. 남편은 한국과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골프비가 싸서인지 20파운드(약 4만원)를 가볍게 치르고 첫번째 홀로 갔다.

 

우리 앞에 4명의 노부부가 라운드를 돌고 있었다. 또 그 앞에도 4명의 할머니들이 있었다.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하니 영국에서는 평상시 오전 시간에 노인들이 많이 나와 골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하는 운동이니 노인들에게 적절할 것 같다. 9홀을 돌고나니 난 시원한 음료수가 마시고 싶어 골프샆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들고 계산대에서 돈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곳의 운영자가 계산대가 열리지 않고 있으니 그냥 음료수를 그냥 가져가고 나중에 18홀이 다 끝나면 돈을 내도 된다고 했다.

난 이곳에 겨우 일 년에 한 번 올 정도인데 내 얼굴도 모르는데 아무 주저함도 없이 그냥 가져가란다.

 

여기서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두 번 보는 것이 아니였다. 면 년 전에는 이삿짐을 푸는 사이에 음료수와 과자등을 사기 위해 동네 가게에 가서 물건을 들고 계산을 하는데 갖고 있던 현금보다도 훨씬 더 나왔다. 그래서 미안하다면 쇼핑봉투에서 다시 물건을 빼놓으려니 그 가게 주인이 나중에 나머지 돈을 내도 되니 그냥 가져 가라고 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아무 거리낌없이 웃으면서 그냥 먼저 가져가란 것이다.

 

이런 작은 것들이 한국 아줌마의 마음에 큰 감동으로 남는다. 먼저 사람을 믿고 행동하는 이들의 사회 속에 빠져 들면 꽁하던 내 마음까지도 풀어져 구름처럼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초록이 무성히 어우러진 자연보다는 이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서민들의 생활 깊숙히 스며진 것이 바로 영국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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