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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3막

이제야 철이 드나 봅니다

요즘은 불현듯 지난 일이 떠오르고 예전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에 창피스럽고 후회된다. 왜 저렇게 행동했을까? 또 60년 간 내 삶을 받혀주던 '제잘난맛'이 사실이 아님을 이제야 깨달아 가고 있다. 아니 나의 허물이였던 것을... 또한 이런 막대한 헛점들은 가졌어도 지금껏 여기까지 살아온 것에 새삼 너무 감사한다. 행운이였다.

영국생활을 시작하면서 난 한 달마다 김치를 담근다. 한국수퍼에서 배추 한 박스 차에 싣고 왕복 3시간 운전, 배추 절구고 양념 준비, 2-3일에 걸려 김치를 담근다. 이런 나에게 '왜 사 먹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난 남편이 김치찌게 좋아하는데 사서 먹는 김치로는 부족하기도 하고 비싸서.. 그런데 이게 사실이 아니였다. 내가 김치 많이 먹는 주범이였다. 해외에 살다보면 문득문득 한국맛이 그리워진다. 이럴 때 라면을 끄내 든다. 김치를 맛 보려고 라면을 끓여 먹는 내 나름의 방식인거다. 내가 바로 우리집 김치소비의 주범이였다. 이런 작은 사실도 이제야 깨닷다니...

이처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껏 수 많은 내 잘못이 있었다. 차마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형사범재 항목을 제외한 다른 소소한 나쁜 잘못은 아마 다 했을 것 같다.  

 

이제부턴 이런 실수나 잘못들은 줄여가야겠다. 맘 같아선 한 개라도 저지르고 싶지 않지만 연약한 실천력 탓에 잘 지킬 자신은 없으니 후회를 줄여나가야겠다. 그러려면 천천히 행동하는 게 낫겠다 싶다. 그나마도 정신력도 신체도 예전 같지 않으니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모든 걸 천천히 해야겠다.

 

인생이 3막 구성 연극무대라면 나에겐 이제 마지막 장이다. 앞으로 30년...

천천히 소소히 내 인생을 즐기면서 30년 보내고 싶다. 하고픈 것 하면서 주변에 도움이 되면서 살아가고 싶다.

 

우선 한국에서 서너 개월 지내면서 이렇게 왔다갔다 하며 살고 싶다. 자식도 다 키웠으니 한국에 오라는 친구도 있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자식이 영국에서 직업을 갖고 있고 곧 남편이 될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내 집에서 30분 걸리는 곳에 집까지 샀다. 이건 앞으로 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들의 강아지를 가끔 맡고 있다. 

 

여고시절 미술시간에 숲을 주제도 그림을 그리는 중이였다. 다른 친구들의 그림은 모두 초록 아니면 단풍잎에 부라운색 줄기로 이어지는 색들이 도화지 위에 나타났다. 그런데 내 그림은 나무줄기를 확대한 구성화가 되었다. 줄기의 색들이 모두 파스텔색들로 메워졌다. 난 의도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렇다고 느껴서 그렸을 뿐이였다. 이때 미술 선생님의 칭찬 많이 들었다. 그런 후 잊혀진 사건으로 40년 지나 50대에 불현듯 붓을 잡았다. 그때의 칭찬이 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던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제는 치열한 삶과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도달해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오래 전 잠시 만났던 영국아줌마랑 서로의 집을 방문한 적 있었다. 그때 줄리아란 친구로 부터 듣고는 아!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이들 가족은 일 년에 한번 씩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가족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미국에서 영국에서 이란에서 프랑스에서 상황이 허락하는 사람이 온 가족을 초대하는 것이다. 부러웠다. 나도 미국에 사는 이모와 엄마랑 셋이서 전라도 함평에 여행간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고 그 즐거움이 이모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덮을 수 있다. 가족과 아니 친구와 함께하는 좋은 시간을 많이 갖고 추억을 많이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처음 30년은 주어진 환경 하에서 키워지는 상황이라 난 그저 운이 좋았다 싶다.

중간 30년은 지나고 보니 좌충우돌, 우왕좌왕싶다.

앞으로 30년은 천천히 조용히 그러면서 욜로족(You Only Live Once)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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