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러시아워 속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헉헉거리며 사무실 책상위에 가방을 올려 놓는데
뒤에서 과장님이 "수진씨 나 좀 봅시다"라는 과장님의 창창한 목소리에 수진은 과장님
책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좋은 소식이 있는데, 오늘 점심 수진씨가 쏠건가?"
진급은 아닐꺼고 왜냐하면 입사한지 겨우 2년도 채 안되었고 대리를 달기에는 아직도
최소한 약 1년 이상은 있어야 되었다. 영문과를 졸업한 후 무역회사에서 근무하였는데
도저히 몰아치는 야근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거의 하루에10시간을씩 일해야만 하는 분위기에
수진은 삶의 의미마저 잃을 정도였다. 결국 2년이 막 지날 즈음 영화사로 직장을 옮겼다.
이곳으로 오고부터는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행복한 나날들을 맞이하고 있다.
수진은 해외 영화와 관련된 일들을 주로 맡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신과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네, 뉴스의 질을 봐서 가격의 범위를 정할테니-- 무슨 소식이예요?" 이 말에 사무실에
있던 다른 동료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수진씨 영국 대사관에서 일년에 한 명씩 선정해서 영국 유학 기회를 주는데 수진씨가
선정됐어." 과장님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와--하는 소리와 박수가 터졌다.
"아니 올해 초 결혼도 하더니 영국 유학까지--수진씨 올 해는 수진씨의 해인가 봐--"
여기저기서 환호가 들렸다.
하루 종일 일이 잡히지 않았다. 남편 홍범이한테 어떻게 말할건지 생각하느라 오후내내
머리 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영국 대사관 담당자한테 알아본 결과 당사자가 원하는 시간에
떠날 수 있고 석사 과정에서 공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수진이가 준비할
것은 영화 계통으로 공부하겠다는 단단한 각오와 용돈 정도만 준비하면 되는 것 같았다.
공식적으론 결혼 1년도 안지난 신혼이지만 결혼식 전에 3년의 동거를 하고 있었다.
겨우 일 년인데 홍범씨도 괜찮을거고 유학은 대학교 때부터의 꿈이였고,
꼭 갈거라고 다짐하면서도 자신에게 영국 유학의 기회가 주어진 현실이 꿈만 같았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저녁 밥상을 근사하게 시장에서 사온 반찬들로 꾸며 놓고는
흥범이 집에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 후로 약 8개월이 지났다. 수진의 마음 속에는 남편과의 헤어짐보다는 영국에 도착해서
헤쳐나갈 일들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배웅 나온 친정식구들의 걱정어린 격려도
남편의 이유없는 두려움과 아쉬움도 수진에게는 남의 이야기처럼 스쳐갔다.
콜롬부스가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항해가 이랬을까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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