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국사람

냉철한건가 합리적인가?

동네 문화센터에서 유화 그림을 그린 지 다음 달이면 일 년이 된다. 멜라니라는 선생과 8명의 동네 영국사람들과 매주 한 번씩 만나 그림을 그려왔다. 퇴직한 엔지니어 할아버지는 이 문화센터에 일 주일에 3번이나 나온다. 오일뿐만 아니라 수채화나 다른 레슨도 하고 있다. 그리곤 나같은 아줌마와 또 다른 할아버지가 멤버다. 일 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이제 친해졌다. 장나꾸러기 역활을 하고 있는 존이란 할아버지가 있어 2시간이 30분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누군가의 입에서 다 함께 소풍가자는 제안까지 나올 정도로 친해졌다.

 

강사인 멜은 대학졸업 후 그 유명한 테이트(Tate) 겔러리에서 일하다 성인 문화센터 강사 겸 화가다. 그래서 이번에 자신의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지난 월요일에 자신의 전시회가 15일에 열린다며 초대장을 건냈다. 안내장을 보면서 자연스레 장소가 어디냐는 얘기가 나오자 키 큰 아줌마가 자신은 못가겠다고 했다. 자신은 길치라서 찾아갈 용기가 없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멜은 이 말에 네비게이션이 없냐고 반문했지만 이 아줌마는 있어도 네비가 길을 헤매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면 자신의 변명을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자세히 보니 우리 동네에서 차로 15분 정도만 가면 되는 곳이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빠서 전시회에 못가겠다는 말도 또 가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수요일이 전시회 첫날이 되었다. 다음 주에는 바쁠 것 같고 마침 한가해서 점심 쯤 가 보았다. 가면서 화환을 가져가야 하는지 좀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영국에서 지인의 전시회에 가는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인지 경험이 없어 우선 그냥 얼굴을 내밀기로 했다.

 

입구에서 멜은 좀 놀라면서도 무척이나 반가운 기색이였다. 방명록을 보니 우리 그룹에서는 아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내 이름이 방명록에서 세 번째였는데 내 위의 두 이름은 멜라니의 부모님이라고 멜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꽃 한 송이가 없었다. 내 한국적 사고로는 이런 경우 화환이 우선 입구를 가득 메우는데 화환은 커녕 썰렁하기까지 했다.

 

한국 같으면, 우리 그룹에서 돈을 모아 축하화환를 보내고 또 날자를 정해 같이 가 보자고 했을 것이다. 그것도 우리 그룹의 동료가 아닌 우리를 지도하고 있는 강사의 전시회다. 그런데도 여기선 아무도 아무 제안을 하지 않았다. 너무도 차가운 반응이였다. 수업에서는 멜과 동료들이 서로 농담하면서 아주 친밀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전시회의 목적이 그림을 판매하는 것인 줄 잘 알고 있다. 그림을 살 의향이 없다고 가서 보지도 않겠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다음 날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소세지 파는 한 폴란드인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나도 같은 견해를 같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폴란드 남자는 여기서 폴란드식 소세지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데 상점을 돌아 다니기도 하고 또 동네 하이스트리트  한 복판에서 간이판매(stall)를 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무료 시식대 앞에는 아주 맛있네라고 말하지만 집에 들어가서는 내 입맛에는 안 맞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영국 텔레비전 다큐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thank you와 sorry 그리고는 좋습니다(It's lovely)다. 남에게 평을 해야 할 때는 100% 다 좋다고 한다. 즉 자신의 돈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절대 나쁜 말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신의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상황에서는 아주 냉철해지는 것 같다. 목적에 상응할 때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비취어 보면 영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 들어가지 않는 일에는 거의 100%가 좋은 말만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직접적 행위에 연관된 상황에서는 냉철해지는 것 같다.

 

여하튼 아래가 멜라니의 작품 중에서

 슬레이트(검정색 돌)나 타일 위에 오일과 펜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 가격은 약70파운드에서 130파운드 정도였다(17만원정도)

 

 

 

 

 

 

 

 날씬한 여자가 바로 멜라니-- 그리고 부모님과 한 커플이 타일위에 그린 펜그림을 보고 있다

로버트 필립 갤러리는 템스강 바로 옆이고,  주차장 한 구석이 넘 예뻐 내 눈길을 잡았다.

 

 

 

 

 

'영국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위, 그 힘을 잃어가네요  (0) 2013.06.04
철학과 학생과 카나비스  (0) 2013.05.28
이민자로 몸살 앓는 영국  (0) 2013.05.01
구직에 4000명 줄서기  (0) 2013.04.14
영국의 강남스타일이란?  (0) 2013.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