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3
'차 사고 났어. 뒷 차가 내 차를 박았어'
'자기는 다친데 없어'
'괜찮아, 지금 내 여권 갖고 풀햄 다리옆 큐 가든쪽으로 나와. 빨리'
거의 집에 다 와서 사고가 난 것이였다. 여권을 큰 여행가방 속 주머니에서 꺼내 들고 미향은 한 숨에
다리쪽으로 갔다. 긴 골목길을 돌자마자 다리 옆에 경찰차가 뻔쩍거리고 눈에 익은 하얀색 밴과 먼지가 뒤덮혀져 회색인지 파란색인지 구분이 안되는 차 한대가 인도위에 무겁게 거쳐 있다. 영철의 손에 여권을 건내니 영철은 다시 경찰의 손에 건내 주었다. 경찰은 무언가를 쓰면서 전화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뒷 사람이 잘 못 했으면 뒷 사람이 보험처리 하면 되지 않아?'미향은 영철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자기 잘 못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결국 지나가던 경찰을 불렀어'
두 명의 경찰이 차 옆에서 미향과 영철을 몇 번씩 쳐다 보면서 수근거리더니 영철에게 다가와서는 경찰과 같이 가야 되겠다고 했다. 둘은 휘둥그레진 눈을 쳐들고 왜 그래야 하느냐고 했더니 영철이 불법체류라고 한다. 그러면서 영철의 여권을 오히려 영철에게 보여 주면서 학생비자 만료기간이 40일이나 지난 상태이니 지금 영철이 영국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 날 미향은 히드로 공항에서 영철을 만났다. 히드로 공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이상한 곳에서 영철에게 간단한 가방을 건내고 영철이 강제로 영국을 떠나는 것을 지켜 보았다. 한국에 가서 다시 비자 만들어서 들어 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서너 번 씩 전화하다가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이다.
미향이의 비자 만료기간도 한 달 밖에 안 남았다 내일까지 그 동안 모아 놓은 것 중에서 1500파운드를 학원에 지불해야 한다. 이곳에 다시 머무르려면 학원에 일 년치 학비를 내고 영어 배우는 학생비자로 연장 신청을 해야한다 아니면 영철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든지-- 영철의 비자 신청이 계속해서 거절되는 것으로 봐선 영철이 영국에 오기가 힘들 것 같다. 그러면 미향이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미향은 웬지 싫다. 우선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모든 아는 사람들은 미향이 영어 자격증이라도 따가지고 올 줄 알고 있을텐데 미향은 그 흔한 캠브리지 esol 영어 자격증 하나 없다. 한국에서 배달 일을 하는 영철의 모습도 싫고 창고에 붙어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전화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지금과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은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결국 미향은 비자 연장 신청을 했다. 다시 일 년을 이곳에서 살아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