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해외유학의 끝은?
이미 딸아이는 대학 입학을 눈 앞에 둔 학생이 되었고 2살 아래의 아들도 대학 입학
준비 과정에 진입한 상황이였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남편에게 취업 통지를 알리는
사람은 없었고 단지 시아버지께서 하시던 출판사를 운영하라는 권유만이 박사가 된
남편을 기다라고 있었다.
또 하나 남편 옆에 남아 있던 선택은 유령 무역 회사였다. 4년 전 한국에서 온 사업가가
영국에서 무역회사를 세우는데 통역과 여려가지 일을 아르바이트겸으로 도운 경험이
있는데 그 회사는 그후 2년을 못버티고 문을 닫게 되었다. 마지막 서류 정리하는 일을 남편에게
다시 맡기고 그 사람은 한국으로 떠났다. 우연히 그 회사의 폐업신고를 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던 것이였다.
미영과 남편은 영국 생활에 익숙한 나머지 영국을 좋아하고 있었고 내심 한국에 돌아가기가 싫었다
심지어 한국에 가면 출판사 사장이라는 일이 있건만 아무 일이 가다리고 있지 않는 이곳 영국이
웬지 좋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국 문화와 어색해진지 오래된 지금에 다시 아이들을
어려운 상황에 넣고 싶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뚜렷한 직업이 없어도 웬지 걱정이 않되고
그럭저럭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안심이 들고 한국에 가면 자신들에게 던져지는 부담과 기대가
너무 커서 더욱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영국에서 살기로 했다.
이 소식에 시부모님들은 이만저만 실망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영국에 살기로 했다는 아들의
마음을 알고 나서는 약 1년 넘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회사의 소유자를 남편의 명의로 바꾸고 두 사람은 한국에서
작은 선물 용품을 비행기로 들여 와서 쇼핑몰에 있는 스툴-리어카-에서 팔기 시작했다.
런던의 도매용품 시장에 가서 악세서리나 가방 등의 물건들을 도매로 구매해서 쇼핑몰에서
팔았다. 아침에는 남편이 가서 팔고 오후에는 미정이가 팔고 5시쯤 남편은 다시 나가서
미정과 함께 스툴을 정리하고 짐을 싸서 집으로 함께 오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과연 얼마나 팔릴까하고 바관적이였는데 11월이 되면서 일년 중 가장 큰 쇼핑 시즌이
시작되면서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고 한 달에 사무실 직원의 일년치 월급만큼을 벌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자신의 명함에 적응하고 생활비는 들어오고, 아이들은 둘 다 대학에 들어갔고
남편도, 미영도,아이들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지금은 전체 집 값의 90%를 은행 융자로
얻어 집도 샀고 두 아이들을 모두 집을 떠나 저마다 각 대학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가
방학이 되면 집으로 온다. 두 사람은 현재의 사업이 더욱 번창해서 가게를 얻어서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이 영국 사회에서 영국아이들처럼 자리 잡기를 바랄
뿐이다.시부모님이 아들에게 기대했던 것처럼--
이제 아이들이 더 이상 "우리 아버지 박사학위 받았어"라는 말까지 하지 않아서 더욱
두 사람의 마음은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