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의사야"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온 남편 동우가 현관 문을 들어서자 마자
수미는 차 열쇠를 낙아채듯이 빼앗아 들고 나가면서 "여보 김밥 많이 싸놓았으니 그것 먹어요
이따 끝나고 전화 할께" 7평 남짖한 거실겸 식당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동우는 여기저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문과 리모콘, 둘둘 말려진 양말, 탁자 위에 놓인 주스 컵과 물컵들을 주우면서
뒷 정원으로 향한 큰 창문 가득 회색빛 하늘위로 칼날 같은 비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들에
넉을 놓고 있다.
동우가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영국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겨우 3개월 전이다. 3년 전 아내의
끈질진 요구에 할 수없이 아내와 아이 둘을 영국으로 보냈었다. 물론 아내의 언니 가족들이 브리스톨에
벌써 8년여 살고 있던터라 별 어려움없이 아내와 딸과 아들을 영국에 보냈다 처음에는 1년 영어
공부하고 들어 올거라 생각했다. 아이들한테서 항상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고 아내도 즐거워
보였다. 동우는 소아과 개인병원 의사였기에 그럭저럭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경기도에도 많은 아파트가 지어져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요즘은 아이들을 한 두명 밖에 낳지 않아
동우의 통장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번에 기막힌 투자를 해보고도 싶었다. 왜냐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순간에 벼락 같은 부자가 되는 것을 하도 많이 보았기에 이번 참에
살고 있던 아파트는 정리해서 동우 병원이 있는 아파트 상가의 작은 점포 두개를 샀다. 이곳에서 나오는 월세로 가족이 영국에서 살 수 있는 월세를 내려고 했다.
동우는 웬지 일 끝나면 곧바로 부모집에 들어가는 것이 학생 때 시험성적 나쁜 것을 들고 들어올
때의 그런 기분 같아서 되도록이면 컴컴해진 다음에 들어갔다. 친구들을 귀찮게 하면서 술도 마셨으나 더이상 친구들이 동우한테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1년은 빨랐다. 그런데 아이들은 영국에 그냥 살고 싶다고 아우성대고 아내도 지금까지 잘 적응했는데
좀 더 살면 안될까하면서 1년을 더 살겠다고 해서 허락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가 버렸는데
의료사고가 났다. 동우가 치료했던 아이가 동우의 처방으로 약을 복용하던 아이가 그만 별안간 죽었다
그나마 허덕이던 병원은 문을 닫게 되었고 모든 법적 절차가 다 끝난 뒤에 결국 동우는 의사 면허증을
빼앗겼다. 동우도 처음에는 영국에 올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무엇하면서 먹고 살지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부모님계신 동네로 모든 것을 옮기고 친구 병원에서
가끔씩 바쁠때 도와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환자에게 처방전을 건네 줄 수가 없었다.
결국 동우는 모든 과거를 버리기로 하고 가족이 살고 있는 영국 브리스톨에 3개월 전에 왔다.
아이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동우의 손을 끌고 동네 공원도 보여 주고 동네 하이스트리트도 구경
시켜주고 아빠랑 초록 잔디에서 축구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아내 수미는 동우를 반기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복잡한 감정이 뒤얽혀 있는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