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며
와 나 환갑이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학생같은 기분인데 60년을 살았다고!
요즘 여성의 평균수명이 84세라니 나에겐 24년 남아 있다. 10년을 두 번 겪고 반 쯤 지나면 이 세상에서 떠나야 한다.
남의 일로만 여겨지던 것이 정말 내 눈 앞에 놓인 것이다. 처음 30년은 양육/교육되어야 했고
중간의 30년은 내 맘대로 아니 내 호르몬 흐르는대로 흘러온 것 같다. 이제 남은 인생 3막은 준비하고 내가 원하는 각본대로 진행해 보고 싶다. 물론 이것도 누군가의 허락과 은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나의 자세에 영향을 미친 것은 우선 내 부모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클 거다. 퇴직 후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는 '정말 나도 내일이라도 이 세상에서 떠날 수 있구나'였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생활을 만 7년 째 하고 계신 엄마를 보고는 '죽음! 쉽지는 않구나'였다. 두 분다 한국의 어려운 상황 하에서 정말 고분분투하며 살아오셨다. 30년 월급장이로 퇴직하신 아버지와 여러 사업을 하셨던 엄마! 오로지 자식들 잘 되기만을 원하셨다. 자신들을 위해선 이사도 안 하고 4층 계단을 평생 오르락내리락하셨다.
일 년에 한 두번 내가 한국에 가서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와 함께 지낸다. 그런데 뇌경색 휴유로 인해 몸이 예전같지 않다. 걷기도 불안한데 어찌 4층 계단을 오르고 내릴 수 있겠는가? 그래도 형제들이 부축여서 이번에도 성공했다. 이것을 겪으면서 60세 이후엔 계단 많은 집에 살지 않게 준비해야 하는구나 느꼈다.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엄마집을 치운다고 치웠지만 좀처럼 깨, 고추장, 된장, 간장, 설탕 등등이 그대로다. 울엄마는 고무장갑과 고무줄도 꾸러미로 사다 놓는다. 그래야 싸다고. 수건, 초, 행주--- 별거 아닌 것 소소한 것들이 다발로 있다. 가구도 많다. 예뻐서 사 놓고는 헌 건 못 버리신다. 방 4개 짜리 공간이 꽉 찼다. 우리도 지금은 손 대지 않고 있다. 앞으로 난 내가 안 사용하는 건 과감히 남한테 주거나 버려야겠다. 되도록 필요한 물건만 지니고 살아야겠다.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행동하고 말할 때 후회가 덜하게 해야겠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선 2주간 엄마와 꼭 붙어서 세끼를 함께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좋아하셨고 나도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 덜해졌다. 해외생활을 많이 하고 있는 나는 딸로서 엄마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른 딸들은 주말마다 엄마와 함께 맞집을 찾아가거나 쇼핑를 함께 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내가 울엄마를 생각할 때 정말 고맙고 미안한 맘 가득하다. 내가 떠날 때도 내 가족 한 명에게서라도 이런 진심을 받고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