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신비한 우연의 일치

윈저아줌마 2021. 7. 12. 15:39

2014년 이후 일 년에 두번씩 한국에 가서 엄마랑 2주 정도 시간을 함께했다. 허나 지난 2019년 가을 이후로 갈 수가 없었다. 영상통화로는 내 맘이 계속 불편했다. 전화 속 엄마얼굴에 자식에 대한 실망감으로 나를 쏘아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떠나기 전에도 많이 망설였다. 코로나검사 음성이여야 하고 한국에서 격리 14일 해야 하고 또 음성결과가 있어야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탑승을 할 수 있다. 돌아와서도 또 10일 격리하면서 두 번의 코로나검사를 받아야 한다.  3주 여행에 코를 6번 찔리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영국에 도착해서 어제 첫번 PCR검사를 했고 마지막 한 번 남았다. 

 

이런 복잡한 절차보다도 우선 내가 2차 접종까지 마친 후 14일 경과한 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엄마도 물론 2차접종자였다. 그래서 격리기간 내내 엄마랑 같이 지내기로 맘 먹었다. 물론 이것이 불법인 것 잘 안다. 하지만 내 상황 안에서 이것 말고는 어찌할 수 없었다. 영국에 사는 내 자식도 내 손길이 필요하다. 집을 오래 비울 수가 없다. 아니면 언제 엄마가 집에 돌아와 머물 수 있으까? 벌써 7년 간이나 병원생활하시는 엄마에게 미안하고 안스럽고 송구할 뿐인데 코로나 이후 이 계절이 엄마와 내게는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엄마집 전화는 누구도 받지 않는다. 엄마집은 비워 놓은지가 엄마 병원생활과 같다. 밤 8시 좀 넘어서 전화가 울렸다. 난 반사적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집었다. 아버지의 고등학교친구분이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친구 분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80대 중반이신 분이 울먹이면서 미안하단다. 울아버지와 형제처럼 지냈는데 아버지 사망 이후 울엄마한테 전화 한번 못하고 찾아보지도 못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간의 상황을 간략히 전해 드리고 전화를 마쳤다. 울엄마집 전화를 내가 응답할 확율은 3%다(14일/365일) 이번엔 2년만의 방문이니 1.5%다.

 

우연히 내 대학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격리기간 끝나고 커피 한 잔을 함께 했다. 궁금했다. 왜 나를 만나려는 걸까? 난 한국에 살지도 않아 계속 만남을 이어갈 수도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을텐데. 할 얘기가 없어 며칠 전 일어난 우연한 전화 한 통의 사건을 먼저 끄집어 냈다. 그러니 이 친구는 우리의 대학 1학년시절 자신에 대해 너무 감추고 솔직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나한테 미안해 하고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난 나도 내 과거에 대해 미안함과 창피스러움이 있지만 내 20살에는 내 호르몬이 흐르는대로 행동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미성숙함과 순수함에 다시는 찾을 수 없는 풋풋함이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떠나는 날 아침이면 하는 습관이 있다. 목욕탕 가는 거다. 외국생활에서 내가 가장 아쉬워 하는 건 바로 목욕문화다. 난 때미는 것 좋아한다. 내가 첫손님이여서인지 세신사 아주머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분의 어머니도 요양원에 계신다며 이제는 자식들도 알아 보지 못 한다고 한다. 그 당시는 '빨리 돌아가셔야 하는데'라는 바램뿐이였단다. 허나 자식을 인지하지 못해도 그 안에서 식사하고 잠 자는 것도 치매엄마의 인생인데 이것도 존중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 먹고 다시 정기적으로 엄마를 찾아본다고 한다. 

 

이 말 끝에 내 맘의 양심고백이 시작됐다. 10 년 전에 엄마가 영국에 오신 적이 있어 엄마를 모시고 프랑스 루르드성지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내 맘에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경제적 여유가 좀 부족했었는지 별 세개 호텔을 예약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허름하였다. 그게 지금껏 내 맘을 불편하게 한다고 털어 놓았다. 왜 좀 더 고급스런 호텔을 예약하지 못했는지 내가 넘 미웠다. 엄마가 언제 또 프랑스에 오게 된다고 그래서 이번엔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지불할 수 있는만큼 돈을 썼다. 엄마는 날 위해서라면 먹을 것도 덜 먹어가면서 버스 타고 다니며 퍼줄 수 있는만큼 사랑을 주셨는데 난.... 그 당시 철이 덜 들었다. 이번엔 친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엄마랑 마지막일지 모르는 시간에 최선은 다하려 노력했다. 

 

이번 여행엔 4번의 우연한 고백이 있었다. 모두 다 자신의 양심에서 불편했던 것을 토로한 것이다. 미안함의 대상들은 아무 것도 맘에 담고 있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 맘이 훨씬 가벼워졌다. 마치 용서 받은 느낌이였다. 아버지 친구분이나 대학친구, 세신사 아줌마도 아마 나와 같은 기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