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정직한 영국인들
벌써 며칠 째 쌓인 눈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는 차들이 움직일 수가 없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오늘은 30센티 정도 쌓인 눈을 옆으로 치웠다.런던에 사는 다른 영국 동료들은 모두들 그간 이틀 동안 출근해서 일을 하였는데 남편만 사무실에 가지 못했다. 허리가 빠지도록 아팠지만 이 눈을 치워야 우리 차도 움직일 수가 있기에 집앞에서 도로까지 약 10미터 정도 되는 길을 허리가 휘청거리도록 눈을 치웠다.
내차가 작기에 우리는 내 차를 몰고 조심스레 골목길을 나와 아스콧(Ascot)으로 왔다. 다니는 차도 별로 없지만 모두들 엉금엉금 기어 가고 있었다. 설국에 와 있는 착각 속에 미소는 잠시 곧 운전에 집중해야했다. 도로 주변의 나무 위에는 하얀 눈꽃이 피였고 내 눈안의 스크린은 온통 하얗다. 런던 외곽고속도로와 같은 M25를 넘어 런던에 들어 서니 아니 나무 위에 눈꽃이 없었다. 그냥 겨울의 앙상한 잿빛 나뭇가지들만이 서있었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런던과 런던에서 조금 벗어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아스콧 즉 우리 집근처에는 설국인데---
남편은 주로 한국 전자제품을 직접 수입해서 들여와 영국에서 가장 큰 몇몇 온라인 판매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창고가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영국 사람들이다. 지난 번에도 남편 사무실에 가서 놀란 일이 하나 있다. 그런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가지의 물건들이 창고에 쌓여 있고 또 수리하는 곳에는 더 산만하게 물건들이 늘어져 있었다. 마치 '날 가져가세요'라는 모습으로 전자제품들이 누워 있는 것이였다. 또 옆 사무실은 큰 물류회사가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도 모든 물건들을 늘어 놓고 있는 것이였다. 그리고는 서로 오픈된 상태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한국 아줌마인 나는 궁금했다 "혹시 물건을 누가 가져가면 어떻해?"
벌써 6 년이 넘게 영국사람들과 일하고 있는데 한 번도 불미스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였다. 가끔씩 확인해 보곤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지는 물건이 없었다는 것이였다. 내가 보기엔 작지만 인기있는 전자제품이여서 슬쩍 가져가기도 쉽고 물건들도 탐나는 것이 많았는데-- 물론 남편 회사 것만이 아니라 그 옆 회사의 물건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기 것 이외에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소하는 분도 그렇고 배달하는 운전수들도 그렇고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 우리도 주변에서 정직한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그러나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정직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다. 한 단편의 모습으로 전체인 것마냥 착각하기는 싫다. 하지만 이 작은 단편들이 모아지면 큰 감동과 존경을 만들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