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같아 보이는 남자들
좀 우수운 이야기이지만 여기 영국체제에서 일하는 한국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 하나있다. 갑자기 한국에서 가족이 온다면 마음에 '어떻하나'라고 당황 비숫한 작은 불편함이 있다.
남편은 영국 사람들과 함께 수입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즉 영국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다. 이 말은 일 주일에 3 일만 사무실에 나가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한다. 영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차를 끌고 사무실에 날마다 나가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꼭 모여서 상의하거나 할 일이 있을 때만 사무실에 나간다. 그리고 사무실을 지킨다는 개념이 없다. 만약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가 있으면 전환되어 담당자가 받을 수 있고 요즘은 대부분 메일로 의사소통하니 각자의 역할분담이 명확해서 노동자 제외하고는 사무실 직장인들이 사무실에 꼭 나가서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우스꽝스럽다. 아니 무의미하다.
사무실에 겨우 3일만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같이 근무하는 영국인들은 일 년에 한 번씩 한 달간의 휴가도 빠지지 않는다. 그 뿐이랴! 집 안에 경사나 슬픈 일, 어떤 사건만 있어도 잘 나오려 하지 않는다. 가끔 이 사람들은 집에 꿀 붙여 놓았나 싶을 정도로 집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좀 늦게 처리할 뿐이고 이곳은 모두가 다 천천히 돌아가니 이 속도가 맞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한국에서 집으로 전화가 온 것을 대낮에 남편이 받거나 하면 "왜 아범 출근 안하고 집에 있니"라고 대뜸 묻는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도 어렵고 여러 번 해도 부모님들은 이 컨셉이 머리에 빨리 자리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아예 지금은 집 전화는 거의 내가 받는다. 이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한국에서 가족이나 방문자가 오면 일 주일에 3일 씩이나(일요일을 제외하면) 집에서 어슬렁거리는 남편을 보기가 어려운가 보다. 왜 안 나가는지 혹시나 직장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닌지 궁금해한다.
15년 대기업 직장을 다녔을 때나 4년 간의 주재원 시절에도 꼭두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나가 다니던 남편이 어느날부터는 이렇게 나갈 필요가 없어졌을 때 본인도 꽤 적응하기 어려웠다. 20년 간의 습관인데 어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을까? 항상 그룹 속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이 자신을 지배하면 어쩔 줄 모르고 몹시 당황하고 불안해한다. 이것을 극복하는데 남편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에서 박사 받고 대학에서 자리를 잡은 지인은 한국 사회 안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어 오히려 2-3일만 일하는 영국식 생활에 쉽게 적응하였다. 그래도 가족이 방문하거나 전화하면 이와 같은 불편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집도 전화는 여자가 받는다.
대학 졸업 후 약 20년 간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한국 남자에게 개인적인 취미가 있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항상 분주히 뛰어다니기만 한 사람에게 천천히 걸으라면 걸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여하튼 느려터진 영국문화 적응기간을 힘들게 거쳐 지금은 가드닝이 남편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목요일에 영국에 오는 내 조카의 눈에는 고모부가 분명 백수같을 것이다. 왜냐햐면 그 아빠나 삼춘들은 아니 한국에 있는 다른 아빠들은 모두 몹시 바빠 보이기 때문이다. 내 동생도 밤 늦게 귀가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초상이라든가 회식이며, 모임이라는 것으로 인해 아니면 요즘은 맡은 일의 기한을 맞추기 위해 늦게까지 자발적으로 일해야 한다며 11시에 귀가한단다. 아니면 밤 새고 새벽에 돌아오는 것도 비일비재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