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이성
어쩜 한국과 영국은 매우 상반되는 점이 매우 많은 나라인 것 같다. 우선 처음 영국에 발을 디디면 눈에 띠는 큰 차이점은 영국 집들은 예쁘게 꽃으로 꾸며진 모습을 보게되고 좀 살다보면 영국 사람들이 집 안과 밖을 고치고, 쓸고, 페인트칠하고 하면서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쉽게 이웃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영국 남자들에게는 자신의 집이 성과 같다는 속담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영국인에게는 집이 몇 백년 된 것을 별 상관하지 않는다. 난 집이 지어진지 30년만 넘어도 웬지 곧 집이 쓰러질 것 같아 걱정이 앞거는데. 그러나 이들은 집이 오래되면 오랜 전통과 캐랙터가 있다고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아파트가 30년 정도 지나면 재건축이 곧 떠오른다.
외국인이 많은 곳이 아닌 영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의 어느 작은 가게를 들어가거나 어디를 돌아다니든 또 이웃이나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처음 느끼는 것이 이들은 참 인사성도 밝다는 것이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잘 한다. 열 번 만나도 백 번 들락거려도 모르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그들의 속 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겉으론 항상 웃는 얼굴이다. 이들은 가끔 우리보고 왜 인상이 serious하냐고 한다.
이들은 속으론 나를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론 나를 반기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인상은 굳어 있지만 속 마음은 무척 따뜻함을 난 잘 알고 있다. 어려운 일에 처한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두 손 두 발 걷어 부치고 찾아가서 도와 주는 우리가 아닌가.
운전하다가 보면 우리는 차 사고가 난 후 서로 목소리를 높혀 소리치는 현장을 쉽게 목격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접촉사고라고 나면 그 자리에서 서로의 보험회사와 개인 연락자료를 건네 받고 곧 자리를 뜬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지만 소리칠 일이 없었다. 누구의 잘못인지 쉽게 인정한다. 곧 잘못한 쪽이 인정하고 곧 보험사에 보고하면 그만이다. 또한 우리는 밤에 길거리에서 술 취해 소리지르거나 난투극같은 싸움장면과 왁작거리는 소리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저녁 6시 이후에는 적막하리만큼 조용해진다. 10년 넘게 살지만 한 번도 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너무도 쉽게 눈물을 펑펑 쏟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너무 감동적이여서 그런가 보다. 감동적인 사연에 펑펑 눈물을 흘리는 연예인에게 시청자들은 많은 동정과 인기를 던진다. 또한 존경하는 사람의 죽음이여서인지 안타까워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통곡을 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 봐 있다. 여기에서도 안타까운 서러운 죽음도 있고 감동적이 사연도 있지만 그로 인해 통곡을 하는 영국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식의 살해범과 함께 법정에 선 부모의 인터뷰에서도 그들은 조용히 얘기한다. 감정에 휘몰리지 않고 글을 읽는 듯한 어투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감정을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더불어 그 감정을 맛갈스럽게(?) 과장하면서 나타내는 것에 쉽게 감동하고 성원한다. 삶의 주 목적이 자신이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고,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은 자신의 관심과 능력을 고려해서 내가 결정하면 되는데 그 주요 맥락은 잃어버리고 주변의 눈길과 견해에 휘말려 자신이 가려던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물론 주변의 압력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하든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서인지 자살도 전세계 일등이 되었나 쉽다. 드라마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현실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니면 드라마나 연예인들의 말 장난으로 꽊 찬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시청해서 온 국민이 드라마 속과 현실을 착각하거나 본인이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는 먼저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치면 토론이나 상황에서 상대방이 기선을 잡는다. 이들은 감정적으로 말하거나 성질대로 행동하는 것을 교육과 상식의 부족으로 여기고 그 사람을 곧 그룹에서 아웃시킨다. 항상 어느 상황속에서라도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큰 존경을 준다. 그래서 특히 영국 사립학교에서는 어느 상황하에서도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어떤 사람의 답답한 상황이든 들어보면 이해되고, 이해되면 안카깝고 속 상하지만 이성적으로 그 사람의 잘못에 기인된 것이면 결코 동정이 이성적 판단을 앞서지 안는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갈수록 감정에 더 휘말리는 것 같아 아쉽다. 우리도 좀 더 이성적 판단과 행동이 더 나은 평가와 성원을 얻기를 바란다.